AshRock
죽음의 격
치매에 걸리거나, 식물인간이 되어 신체의 자유를 잃거나, 정신질환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존엄사를 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타당성 검사의 주체가 사람인 이상, 오류가 발생한다. 현재는 엑시트 네트워크에 메일로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받는 방식이였는데, 속이고 약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의료업계가 타당성 검사에 전면적으로 협조한다고 해도 분명 빈틈은 있을 것 이다.
필립은 엑시트 네트워크에 가입하려면 50세 이상등의 규칙을 세워 사람을 가렸었지만, 이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그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자격이 있다고. 극단적이고 기존 내 생각에도 거부감이 들어 반박하려 했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흔한 이야기로는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는 자살을 금지해야할 명백한 이유는 될 수 없고, 몇몇에게 효과가 있는 위로방법중 하나에 불과할 것 이다.
숨기려한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난다. 이성적인 사고 끝에 공개적으로 죽음을 원한다고 주변인에게 말한 뒤, 인사를 나누고 편안하게 떠나는게 잘못되었을까? 오히려 꽁꽁 숨기고 의논할 틈도 없이 혼자 조용히 목을 매달고 끔찍한 시체를 남기는 것 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마지막 순간을 자신이 정할 수 있다는 그 권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엄사가 허락됨으로써, 죽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당장 힘든 일이 있어도, 살아가다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이는 예측하려 한다해도 예측할 수 없는 것 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기대감이 적고 고통이 더 크다 판단하여 삶을 그만두었는데 그 앞에는 희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탈출구가 가까워진 것 만으로도 사람들이 쉽게 삶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나의 경우라면 어떨까. 위에서 든 예시, 노화, 치매, 식물인간 등으로 타인의 도움없이 살아갈 수 없고 스스로 할 수 있는게 없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을때는 분명 존엄사를 선택할 것 이다. 참고 살아가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버티어도 마시멜로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상적인건 위의 상태가 되기 전에, 삶을 완성했다고 느낄정도로 보람찬 무언가를 해내는 것 이다. 이미 정점을 찍었고, 앞으로는 완만하거나 가파른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하면 미련없이 떠날 수 있다. 그러니 주체성이 있을때, 정점을 찍으려 노력하는 것도 있다.